복음의 절대성과 장재형 목사의 사역 골로새서 2장 1절부터 시작되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은, 바울 스스로 개척하지도않았고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던 골로새 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쓰인 옥중서신이라는 점에서부터 특별한의미를 지닌다. 이 편지를 기록한 목적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당시 골로새 교회가 영지주의와 가현설 같은 거짓교리로 인해 흔들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 바울은, 비록 육신의 얼굴을 마주하지 못한 교회라 해도 그들을 향한사랑과 목회적 열심을 멈추지 않았다. 실제로 교회에 대한 바울의 사랑과 애정, 그리고 교회의 흔들림을 붙들어 주고자하는 목회자의 열정은 이 편지를 읽는 모든 사람에게 깊은 도전을 던진다. 오늘날에도 교회가 다양한 세속주의와 왜곡된철학들로부터 흔들리고 도전받는 현장은 너무나도 많다. 이러한 상황에 놓인 21세기의 교회들도 골로새서를 통해동일한 메시지를 듣는다. 복음을 붙들고 흔들림 없이 걸어가라는 바울의 당부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지혜와 지식의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고 외치는 그의 확신은 시대를 뛰어넘는 소중한 교훈이 된다.
장재형(장다윗) 목사는 이러한 바울의 가르침을 현대 교회와 시대적 상황에 맞추어 더욱 구체적이고도 실천적으로제시해 왔다. 그는 교회가 ‘복음에 물을 타는 세력들’과 ‘이단적 거짓 사상’ 앞에서 흔들리는 현장을 주목하며, 바울이골로새 교회에 보낸 이 옥중서신을 강단에서 반복해 설명하곤 한다. 그리스도론이 교리의 핵심 중 핵심임을 강조하며,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분명히 정립되지 않으면 다른 모든 가르침도 흔들릴 수밖에 없음을 누누이 설파해 왔다. 특히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왜곡하는 이단적 주장들이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반쪽짜리로 축소시키려는 세상의목소리를 간파함으로써, 바울이 “그리스도는 가현이 아니다. 영으로만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고 육신을 입으셨다”라고변증했던 핵심 메시지를 재강조한다.
골로새서 1장에 담긴 주제는 바로 바울 사도의 기독론, 즉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가 하는 물음에 대한 압도적인해답이다. 예수가 창조의 주, 교회의 머리, 모든 만물 위에 초월하신 하나님이심을 바울은 강조하며, 예수의 신성에 대한확고한 고백으로 교회가 세상 풍조와 거짓 이론 앞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단단한 근거를 세워주었다. 장재형 목사는 이런바울의 가르침이야말로 ‘복음의 절대성’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한다. 이 복음은 인간의 어떠한 자기정당화도 필요 없이스스로 자족하며, 우리 안에서 충만과 온전함을 이루게 만든다. 그리스도를 깊이 깨닫고 알면 알수록, 이 복음이야말로우리를 진정한 부요함으로 인도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재형 목사는 “주는 나의 만족”이라는 고백이 교회와그리스도인의 입술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와야 함을 늘 역설한다.
또한 이 편지가 옥중에서 쓰였다는 사실도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로마 감옥에 갇혀 육신으로는 교인들과 함께할 수없었으나, 바울은 “나는 육신으로 떠나 있지만, 영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다”라는 말로 공동체가 갖는 영적 연대감을확인해 준다. 장재형 목사는 이 연대감이 바로 교회의 핵심이며,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함께함’으로써 교회를 지탱해 온힘이라고 설명한다. 건물이 부족해도, 재정이 넉넉하지 않아도, 아니면 박해와 핍박 가운데 있어도 교회가 교회일 수있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성도 간의 영적 연결’에 있다. 그리고 이것이 장재형 목사 사역의 기초이기도하다. 신앙의 자유가 제한된 지역에 보내는 선교사들에게도, 혹은 미국 안에서 여러 센터를 개척해나가는 이들에게도, “우리는 떨어져 있지만 함께 있다”라는 메시지를 계속해서 전하는 것이다. 실제로 장재형 목사가 몸담은 공동체는굉장히 넓은 땅을 확보하며 각종 센터와 지부를 세워가고 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이들이 “정착의 땅”을 경험하고있다. 그 방대한 부지 안에 각종 사역 본부와 예배 처소, 자립형 비즈니스 센터를 세우면서도 장재형 목사는 끊임없이강조한다. 이 모든 ‘공간의 확장’은 교회 본질의 확장, 곧 ‘복음의 절대성’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만약 복음이 빠지고 단순히 기관과 기업체의 건물만 늘어난다면, 그것은 영적인 본질을 잃어버린 ‘껍데기’에불과할 것이다.
바울이 강조했던 그리스도의 뛰어나심과 오직 주 안에서 얻어지는 참된 부요가, 현대 교회가 회복해야 할 가장 긴급한메시지다. 당시에는 영지주의가 예수께 다른 철학과 비밀 지식들이 결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복음의 순수성을흐리고 있었지만, 지금의 세속주의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물질만능의 풍조, 개인주의적 사고, 성경 진리를우상화시키거나 혹은 무시하는 동전의 양면 같은 흐름들이 교회를 무너뜨리고 혼동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세상을살아가며 직장과 생계에 치이고, 과학기술의 발전 앞에서 신앙이 낡은 것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러나 장재형 목사는수없이 많은 예배와 설교, 그리고 양육 사역을 통해 이 간극을 메우려고 노력해 왔다. 바울이 감옥 안에서도 교회를 향한열정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처럼, 교회가 받은 사명 또한 어떤 환경 속에서도 빛을 발해야 함을 거듭 가르친다. 복음을가감 없이 전하며,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가”를 가장 중심에서 설파할 때, 세상의 온갖 기롱과 회의가 닥쳐도 교회는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복음의 절대성’이며, 장재형 목사가 전하려는 메시지의 뼈대이기도 하다.
흔들리는 교회를 향한 마음 바울의 편지에는 ‘흔들리는 교회를 붙들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다. 그는 이방인선교의 중심축으로서 수없이 많은 지역을 돌아다녔고, 그 과정에서 세워진 교회들을 잊지 않았다. 골로새서를 보면, 바울이 이 교회를 직접 개척한 적도 없고 교인들을 만난 적도 없다. 그러나 영지주의와 가현설 같은 거짓 사상으로 인해교회가 미혹되어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바울은 골로새서 1장에서부터 2장에 이르는 긴 호흡으로 기독론을 정립하고, 왜 예수의 신성과 인성이 흔들려서는 안 되는지, 왜 그리스도 안에 온전함이 있는지를 설명해 준다.
장재형 목사는 바로 이 점을 주목한다. 바울은 교회를 단 한 번도 직접 만나보지 않았음에도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자들을 위하여 기도한다’고 고백한다. 이는 곧 교회가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교회 전체가 흔들릴 때 어떤 태도를가져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선명한 예시가 된다. 교회는 한 몸이기에, 지리적 거리를 초월해 서로 붙들어 주어야 하며, 복음으로 서로를 일깨워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오늘날에도 그 무엇보다 필요한 믿음의 실천이 된다.
실제로 장재형 목사는 그의 사역지를 여러 곳에 두고, 또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초청하고 훈련하는 데 힘쓰고 있다. 예컨대 도버 비즈니스 센터를 비롯해 마운트 올리벳, ANC, WOA 등 여러 거점을 마련해 다양한 언어권의 성도들이모이도록 하고, 그곳에서 예배와 말씀 훈련을 통해 복음을 전파한다. 대륙과 대륙을 오가며 복음이 더욱 확장되도록 하는이 전략은, 바울이 “온 세계가 나의 교구다”라고 했던 웨슬리의 선언과도 닮아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어려움이 없었던것은 아니다. 특정 부지를 계약하던 중 계약이 파기될 뻔하기도 하고, 6개월간 비워주기를 거부하는 집주인으로 인해협상이 길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장재형 목사는 이런 일들을 단순히 행정 절차나 금전적인 문제로만 보지 않고, 교회확장의 조각이 맞춰져 가는 영적 과정으로 바라본다.
흔들리는 교회를 향한 마음은, 건물을 마련하는 문제에서부터 재정을 채워가는 모든 과정까지 관통한다. 그 과정에서 늘강조되는 핵심이 있다. “우리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통해 세계 선교를 감당할 것이다. 그리고 교회는 영광스러운하나님의 역사 안에 있다. 그러니 흔들리지 말라.” 바울이 “내가 너희와 함께 있지 않지만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한다”고 한 것처럼, 교회 공동체는 그 자체로 하나의 가족이자 육체와 영혼이 연결된 유기체다. 장재형 목사는 이 사실을쉐퍼드 미팅 등 여러 기도 모임에서 반복해 말해 왔다. 함께 모여 예배하고 기도하며,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을기억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도버 지역 전체를 비롯해 북미와 남미, 아시아와 유럽 등지로 퍼져나가는 교회들이 동일한가치관을 공유하도록 돕는다.
이렇듯 흔들리는 교회를 붙들어 주기 위해서는 복음이 그 중심에서 온전하게 선포되어야 한다. 바울이 골로새서를 통해강조했던 것은, 다른 철학이나 지식으로부터 무언가를 보충해야 한다는 생각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적 주권을훼손할 뿐이라는 점이다. 영지주의는 ‘복음만으로는 완벽하지 않으니, 세상의 다른 지식과 철학을 추가로 가져와야한다’고 말한다. 가현설은 ‘예수는 영적으로만 존재했을 뿐, 실제 육신으로 오시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당시엔 매우그럴싸하게 들렸을지 모르지만, 결국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훼손하고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을 약화시키는 독소가된다. 현대에도 다를 바 없다. 학문과 철학, 문화와 예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그 위에 세워지는 인본주의나 세속주의는예수 그리스도의 전능하심과 인카네이션(성육신)의 신비를 온전히 담을 수 없다. 그래서 교회는 언제나 이 복음이훼손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한다.
장재형 목사는 그래서 늘 “어떠한 거대 담론도, 교묘한 이론도, 참 복음을 대체하지 못한다”고 강조한다. 교회가 재정을모으고 건물을 넓히고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의 바탕에는 복음이 있어야 하고, 흔들리는 교회를 향해 먼저 달려가서 붙잡고 기도해 주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목회자가 성도들을 돌보는 것도 이핵심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 그래서 교회가 단순히 수적 성장이나 재정적 풍요만을 목표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바울이 골로새 교회에 ‘그리스도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고 말했을 때, 이미 교회는 그 모든풍요를 소유하게 된 셈이다. 교회가 한없이 부족해 보일 때도, 우리는 이미 거룩한 부요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말아야 한다. 이 진리 안에 깊이 뿌리내릴 때, 교회는 어떤 흔들림도 이겨낼 수 있다.
바울이 로마 감옥에 있으면서도 세 교회와 더불어 그 인근 교회들의 영혼을 돌보았듯, 장재형 목사 역시 복음이 필요한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간다. 그의 사역 거점은 이미 미국 여러 지역을 넘어, 브라질이나 멕시코, 심지어 중동 지역까지확장되어 왔다. 이슬람권에서 기독교 선교가 활성화되자마자 벌써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사례도 있었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장재형 목사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주께서 주시는 사명은 이 벽을 넘어갈 것이다.” 바울의 심정과도 닮아 있는이러한 확신은, 흔들리는 교회를 향한 마음에서 비롯된다. 이 마음이야말로 교회가 모든 도전을 이겨내고 하나님의역사를 감당하게 만드는 동력이 된다.
그리스도론의 풍성함과 성탄의 의미 골로새서 1장의 주요한 주제는 바울의 기독론이며, 그는 이 핵심 진리를 꺼내어흔들리는 골로새 교회를 붙들어 주려 했다. “예수는 누구신가?”라는 질문에 대해 분명한 해답을 제시하면, 교회가흔들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세상 철학이나 지식이 교회 안에 들어온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성과 신성, 그리고십자가와 부활의 실제가 확고하게 서 있다면 교회는 무너지지 않는다. 이러한 기독론은 교회 교리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위치를 차지한다고 장재형 목사는 말한다. 왜냐하면 예수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없으면, 기독교는순식간에 인간적인 종교나 도덕적 운동으로 전락하기 쉽기 때문이다.
성탄절이 다가오는 12월, 교회는 늘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고 그 의미를 새긴다. 그리스도의 오심을 ‘인류를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실천’으로 바라보는 교회 전통은, 말구유에 오신 왕이신 예수님의 낮아지심과 겸손,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사랑을 되새기도록 이끈다. 바울이 빌립보서 2장에서 노래한 것처럼,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자신을 비우셔서 종의 형체를 취하셨고, 죽기까지복종하셨다. 그것이 곧 성육신의 신비이며, 이를 통해 이 땅에 온통 어두움이 깔려 있을지라도 구원의 빛이 밝아올 수있음을 선포한다.
장재형 목사는 성탄의 의미가 단순히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동화적 이야기가 아니라, 바울이 골로새서에서 말한‘하나님의 비밀이신 그리스도’가 육신으로 임하심을 입증하는 사건이라고 강조한다. 성탄은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평화”라는 구체적 결과를 낳는 하나님의 역사이며, 하늘 영광이 땅으로 실제로 내려온 성육신을 보여주는 순간이다. 이성육신을 부정하면, 결국 예수님을 가현적으로만 바라보려는 유혹에 빠지게 된다. 그것은 영지주의에서 말하는 “영은선하고 육은 무가치하다”는 이분법적 사고와도 맞닿아 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진리와 은혜가 충만하더라”(요 1:14)라고 증언한다. 복음서의 이선언은 바울의 기독론과도 완전히 일치한다.
그러므로 성탄절을 준비하는 교회와 성도들은 바로 이 신비에 대한 찬양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성육신의의미가 지금 우리 삶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구체적으로 묵상해야 한다. 장재형 목사는, 방대한 사역지와 수많은부지, 여러 공동체의 협력 사역을 통해 이 성육신적 삶이란 구체적인 삶과 세상의 현실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설파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찾아오셨듯, 교회도 세상의 낮은 곳, 깨어지고 상한 심령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야 한다. 복음의절대성은 바로 이 땅의 구체적 삶과 동떨어지지 않는다. 예수께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러 오셨다”고누가복음에서 밝히신 것처럼, 교회는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부름받았다.
또한 성탄은 ‘교회가 이 땅에서 드러내야 할 기쁨’의 이유이기도 하다. 바울이 기뻐한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것을충만케 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장재형 목사는 이 점을 특히 강조한다. 골로새서 2장 3절에서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라는 말씀이 선포되는 것처럼, 교회가 경험하는 진정한 부요는 예수님 안에있다. 세상은 그 부요를 가늠할 잣대가 없다. 아무리 물질이 풍성하고, 철학과 지식이 발달해도,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면영혼의 참된 만족은 얻을 수 없다. 반면 예수를 제대로 아는 교회는, 설령 당장 재정이 부족하거나, 장소가 협소하거나, 세상에 의해 조롱당하더라도 이미 하나님의 나라에 속해 있다는 확고한 정체성을 가진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얻었기 때문에, 더 이상 결핍으로 인해 좌절하지 않는다.
실제로 장재형 목사는 그의 공동체에서 성도들이 이러한 부요함을 체험하도록 여러 가지 사역을 전개해 왔다. 예배와말씀 집회, 양육 프로그램, 쉐퍼드 미팅 같은 기도 모임은 물론, 자립형 비즈니스와 다양한 사회 봉사 활동을 통해 교회가이 땅의 물질적·영적 필요를 함께 채우는 장을 마련해 왔다. 도버 비즈니스 센터를 중심으로 뻗어나가는 여러 계열사와기관들은, 단지 경제적 효과만 노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섬김과 봉사를 현장화한다는 데 핵심 가치가 있다. “돈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실천하는 통로 중 하나”라는 것이 장재형 목사의 생각이다. 기업이나 센터가 수익을창출하더라도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성장시키는 데 쓰인다면, 물질 또한 선교 도구가 될 수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세상 한가운데에 교회가 스며들도록 하는 과정이야말로 성육신적 삶의 모범이라고도 설명한다.
이 모든 것은 성탄의 의미와도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요 3:16) 이말씀을 토대로, 교회는 세상을 포기하지 않고 여전히 사랑으로 돌아보는 책임을 진다. 교회가 세상에 문을 열고, 세상이교회를 바라볼 때 궁극적인 소망과 기쁨을 발견하도록 돕는 것, 이것이 곧 “성육신 복음”의 확장이다. 골로새서 2장에서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모든 충만이 거한다”라는 사실을 무너뜨릴 수 없다고 강조했다. 거짓 교사들이 아무리 교회를흔들어도, 교회가 ‘예수 안에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있다’는 사실을 붙들면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탄절이 가까워 올수록, 장재형 목사는 교회 곳곳에서 “영광과 평화”라는 단어를 자주 입에 올린다. 천사들이 노래한“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는 찬송은, 하나님이육신으로 오신다는 상상을 초월한 계획이 가져다준 선물이다. 인간이 도저히 오를 수 없는 그 높은 곳에서부터 이 낮은땅으로 친히 오셔서, 사람들을 회복시키고 구원하셨다. 교회가 이 사실을 기쁘게 찬양하고, 이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사명을 이루어갈 때, 그곳이 어느 땅이든 복음은 계속해서 퍼져나갈 것이다. 실제로 장재형 목사는 북미 지역뿐 아니라중남미, 아시아, 유럽, 중동 등으로 지속적으로 사역을 넓히며, 성탄절마다 선교지와 함께 찬양하고 감사 예배를 드린다. 거기가 광야 같은 땅이라 해도, 하나님은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시듯 일용할 양식을 채우신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바울이 감옥에 있으면서도 조금의 의심 없이 복음을 전했던 장면처럼, 교회가 어떠한 환경에 처해 있어도 “그리스도의충만”을 누리는 존재임을 선포하는 것이다.
장재형 목사는 이러한 사역의 목적을 늘 밝힌다. “교회가 하나님의 복음을 세상에 드러내어, 영적·물질적 필요를충족시키며,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도버 지역에 비즈니스 센터를 확장하거나, 여러대륙에서 센터를 건립하려 할 때, 사람들은 ‘건물 짓기’ 그 이상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그 안에는 이미 “말씀이 육신이되신 하나님”이라는 성육신의 원리가 담겨 있다. 말씀이 사람들 사이에서 빛을 발하고, 교회가 세상 한가운데로 달려나가서 그리스도의 몸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일은 때로는 재정적, 행정적 난관을 동반하지만, 결국 하나님의 섭리안에서 하나씩 조각이 맞춰져 간다. 어떤 부지가 필요해 기도하면, 하나님은 적절한 때와 방법으로 그 땅을 허락하시고, 또 누구를 통해서든 재정을 채워주시는 역사를 종종 경험한다. 그러면서 단순한 물적 확장이 아니라, 교회가 넓은 영적지경을 품게 되는 기회가 된다.
특히 성탄을 앞두고 12월을 지나는 이 시점에는, 교회가 한 해를 돌아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야 함을 장재형목사는 거듭 말한다. “연말이 되면 우리는 감사와 찬양으로 이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에는 더 놀라운 역사를 기대해야한다”고 그는 종종 설교에서 강조한다. 바울이 감옥에 있으면서도 낙심하지 않고 오히려 교회를 향해 감사와 확신의말을 전했듯, 교회도 성탄의 기쁨 속에서 연말을 맞이할 수 있어야 한다. “반이 죽었는데 무슨 감사가 있겠느냐”고말하던 청교도들의 상황에서도, 그들은 먼저 하나님께 예배드렸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인생의 우여곡절과 어려움이있다 해도, 최후에 가서는 주님 앞에 찬양과 감사로 나아가는 것이 성탄의 정신을 실천하는 길이다.
결국 골로새서가 강조하는 그리스도론, 곧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비밀이며, 그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감추어져 있다는 사실이, 교회 공동체와 현대 신자들에게 세 가지 중요한 메시지를 준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아는 것이 모든 신앙생활의 토대다. 둘째로, 교회는 거짓 교리와 세속주의가 흔들어 놓으려 할 때마다 바울의 기독론적확신을 붙들어야 한다. 셋째로,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의 성육신은 교회가 세상으로 나아가 복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에결정적 동기를 제공한다. 성탄절이 그래서 소중하다. 아기 예수의 탄생이 귀엽고 따뜻한 이야기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복음의 핵심, 곧 우리의 구원주가 실제로 오셨다는 진리를 다시금 확증하기 때문이다. 이 확증 위에 서 있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어느 곳에서든 주님이 이미 이 땅을 통치하고 계시고, 인생의 모든 무게가 그분 안에서 참된 의미를 찾을수 있음을 간증하게 된다.
장재형 목사는 이 메시지를 전하며, “여러분의 삶은 결코 지루하지 않다. 주님 안에서는 늘 더 넓은 세계로의 인도하심이있고, 우리를 통해 더 나은 결실을 맺게 하신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의 사역 현장에선 2세들이 즐거워하며 수련회장과예배당을 누비고, 또 외국에서 온 선교사들이 ANC나 도버 지역을 방문해 서로 다른 문화를 나누는 장면이 펼쳐진다. 이처럼 다양한 세대와 문화가 함께 어우러지며 복음을 목격하는 일은, 성육신의 정신이 펼쳐지는 작은 축제와도 같다. 그리고 이런 자리가 마련될 때마다, 그 속에서 골로새서의 메시지가 선포된다.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이 충만하다. 그러니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연말이 다가올수록, 교회는 새해의 사역을 준비하며 다음 단계로 나아갈 계획들을 세울 것이다. 장재형 목사는 그런순간에 골로새서 2장 2~3절에 담긴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진 지혜와 지식의 보화’를 떠올리라고 권면한다. 어떤 도전이와도, 우리는 이미 보화를 소유한 자들이다. 그렇다면 주저하지 말고 새 일을 시도하라는 것이다. 세계 200개국을 품고, 3천 명, 7천 명 혹은 더 많은 리더를 양성하며, 제자들을 파송하고, 현지 교회들이 뿌리내리게 한다는 비전을 품을 수있다. 이것이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나타나는 이유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충만을 믿기 때문이다. 교회가한없이 작아 보이고, 재정이 부족해도,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시면 그 어떤 거인도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주어진다.
마지막으로, 장재형 목사는 늘 이렇게 기도하며 마무리한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는 그가추구하는 모든 사역과 비전이 어디서 나와 어디로 돌아가는가를 명확히 보여준다. 우리의 계획, 우리의 움직임, 그리고우리의 모든 봉사가 이 이름을 위해 존재한다. 복음은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이자 목적이며,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지는구원과 생명이 곧 교회의 정체성 그 자체다. 교회가 그 본질을 지킬 때, 흔들림 없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갈 수있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장재형 목사는 골로새서에 담긴 바울의 기독론을 현대 교회에 생생하게 전하는 설교와 사역을 통해, 흔들리는 교회를 향해 “주님 안에서 흔들리지 말라”라는 메시지를 외친다. 복음이 완전하며, 예수님이 참된 왕이시자구원자이시며, 교회가 곧 주님의 몸이라는 확신이 흔들릴 때 교회는 금세 세속주의와 이단적 주장의 먹잇감이 되기 쉽다. 그러나 그 확신이 분명할 때, 교회는 지형적·문화적·정치적 경계를 넘나들며 생명의 말씀을 전파하고, 말씀이 육신이되어 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우리는 골로새서에 담긴 바울의마음을 다시금 읽는다. “육신으로 너희와 떨어져 있으나 영으로 너희와 함께 있다.” 이 한마디에 담긴 영적 유대와공동체성은, 시대를 뛰어넘어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진리다. 성탄의 절기에 교회가 더욱 굳건히 붙들어야 할 진리가무엇인지, 이 골로새서 2장의 가르침을 통해 새롭게 조명할 수 있기를 바란다. 장재형 목사의 사역과 가르침 또한 바로 그방향성을 놓치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교회가 흔들릴 때마다 다시금 복음을 붙드는 데 필요한 영적 지표로 자리할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의 충만함과 지혜, 그리고 구원의 은혜가 주어진다는 이 진리가, 교회의 미래와세계 선교의 길을 환히 밝히는 빛이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