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하나님의 사랑 -장재형목사

  1. 복음의 핵심과 하나님의 사랑

장재형(장다윗)목사가 설교와 강연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핵심 주제는 바로 “복음”이다. 그는 복음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 인간의 모든 죄와 고통을 짊어지시고 죽으신 것, 그리고 부활하심으로써 인류에게 새 생명의 길을 열어주신 구원의 사건 전체로 이해한다. 그에게 복음은 단순한 종교적 교리가 아니라 인류 역사와 우주적 차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뒤바꾸는 결정적인 사건이다.

복음에 대한 정의로서, 요한복음 3장 16절은 언제나 중요한 출발점으로 제시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는 말씀은 복음이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을 선포한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장재형목사는 이 구절을 언급하며, 우리가 죄로 인해 영원히 단절되었던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전적인 선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다는 점을 깊이 묵상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우리가 복음을 기뻐하고 설레어하며, 동시에 복음 앞에서 경건한 두려움과 겸손을 갖게 되는 이유는 바로 이 하나님의 사랑의 크기 때문이다.

그는 자주 로마서 5장 8절을 인용한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 이 말씀이 뜻하는 바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무언가 자격이 있기 때문에 사랑을 베푸신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오히려 인간은 죄 아래 있었고,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구원에 이를 수 없는 상태에 놓여 있었음에도, 하나님은 아무런 조건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는 것이다. 여기서 장재형목사는 복음을 단지 도덕적 모범이나 종교 의식으로 제한하지 말고, 철저히 은혜의 사건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곧, 복음이란 인간의 선행이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어떤 인간적 자랑도 끼어들 틈이 없다는 것이다.

장재형목사는 복음을 “사랑의 사건”이라 부르며, 그 사랑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현장이 십자가라고 강조한다. 사랑은 말로만 외칠 때 공허해질 수 있으나,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죽으심, 그리고 부활을 통해 ‘역사적 사실’이 되었다. 예수께서 자신을 완전히 비우신 채, 인간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대속의 제물이 되신 사건은 다른 어떠한 사랑의 형태로도 비교할 수 없는, 곧 절대적으로 ‘독보적인’ 사랑이다. 이 사랑이야말로 복음이 전하는 기쁜 소식의 진수라고 말한다.

그리고 복음이 사랑이라면, 그 사랑에 대한 증언은 피할 수 없는 당위가 된다. 즉,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셨고, 우리를 위해 죽으셨으며, 죽음을 깨뜨리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은 필연적으로 그것을 ‘증언’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장재형목사는 사도행전에서 제자들과 사도들이 어떠한 모습으로 증언했는지를 자주 예로 든다. 스데반은 극심한 박해 속에서도 돌에 맞아 순교하기 직전까지 예수께서 인류의 구세주이심을 전했다. 베드로는 오순절 성령 강림 후 온 예루살렘 앞에서 복음을 외쳤고, 바울은 이방 땅으로 순회하며 복음의 증거를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걸고,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예수가 ‘참된 생명의 길’이심을 세상에 알렸다.

이러한 증언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들이 복음을 ‘지식’으로만 배운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체험하였기 때문이다. 장재형목사는 이 사랑의 체험을 “복음에 사로잡힘”이라고 표현한다. 복음이 단지 “예수가 누구인지 머리로 이해하는 것”으로 멈춘다면, 그것은 바리새인적 지식에 불과하다. 진정한 복음 체험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자신의 죄와 절망을 해결해 주셨음을 깨닫고, 전 존재가 변화하는 사건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된 이들은 자연스럽게 복음의 증언자가 되고, 이 땅을 향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사명을 받게 된다.

장재형목사는 이 복음이 모두에게 열려 있음을 강조한다. 배경이나 학식, 도덕적 자격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죄인에게 “죄 사함과 새 생명”을 선포하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것이다. 특히 사도행전 2장의 베드로 설교 장면에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행 2:21)는 선언을 언급하면서, 복음은 결코 특정 민족이나 집단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확실히 짚어준다. 그러므로 장재형목사가 이끄는 메시지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공통분모는, 민족과 언어의 장벽을 넘고, 역사와 문화의 한계를 뛰어넘으며, 죄 가운데 괴로워하는 모든 인생에게 찾아오시는 전적인 은혜의 실체가 된다.

나아가 그는 복음이 우주적이고도 동시에 개인적인 메시지라는 점을 거듭 상기시킨다. 곧, 그것은 우주적 수준에서 인류 전체의 운명을 바꾼 사건이지만, 동시에 개인 한 사람의 내면과 삶의 태도를 전환시키는 능력이 된다. 우리가 복음을 받고 믿게 될 때, 그것은 더 이상 개념이나 교리가 아니라 우리 내면에서 폭발하는 새로운 생명의 힘으로 작동한다. 사랑을 입은 자는 사랑을 흘려보낼 수밖에 없고, 은혜를 체험한 자는 그 은혜를 세상에 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장재형목사는 복음이야말로 세상에 필요한 ‘유일한 희망’이며, 그 확고한 토대 위에서 교회와 공동체가 세워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는 또한 복음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야 할 열매로서 “서로의 짐을 지고 사랑하라”는 말씀(갈라디아서 6장 2절)을 제시한다. 복음이 사랑이라면, 복음을 전하는 이들의 공동체도 반드시 사랑의 기쁨과 연합으로 가득 차야 한다는 뜻이다. 예수께서 ‘세계를 이겼노라(요한복음 16장 33절)’라고 선언하실 때, 그것은 무력을 동원하여 세상을 굴복시킨다는 개념이 아니라, 사랑과 섬김으로 이긴다는 역설적 승리임을 상기시킨다. 그러므로 교회가 복음을 붙들고 진정으로 서로 사랑하는 모습으로 세상을 섬길 때, 그 자체가 세상에 대한 강력한 증언이 된다고 장재형목사는 강조한다.

결론적으로, 장재형목사의 메시지 안에서 “복음의 핵심은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위하여 오시고 죽으셨으며, 부활하심으로써 사랑을 완성했다”라는 선언으로 요약된다. 그 어떤 철학적 이론이나 윤리적 가르침도 대체할 수 없는, 이 땅의 모든 죄인에게 열려 있는 위대한 사랑의 이야기, 그것이 곧 복음이다. 그리고 이 복음 앞에 선 모든 사람은 그 사랑의 사건에 반응하여 변화된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 그의 첫 번째 강조점이다.

죄와 의, 그리고 대속의 길

장재형목사가 두 번째로 깊이 다루는 핵심 주제는 바로 “죄와 의, 그리고 대속”이다. 복음이 사랑이라면, 왜 인간에게 그러한 희생과 구원이 필요했는가? 그 밑바탕에는 인간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우선, 죄가 무엇인지 제대로 인식해야만 복음의 사랑과 은혜를 온전히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 장재형목사의 가르침이다.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개념인 죄는, 단순히 도덕적 잘못이나 사회적 위반 행위를 넘어선다. 그는 로마서 1장에서 바울이 선언한 “죄는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것”이라는 정의에 주목한다. 인간에게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등지고 자신이 주인 되려는 태도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으며, 그 결과 온 세상이 죄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이어서 장재형목사는 이 죄가 가져오는 파급 효과를 “사망의 왕 노릇”이라는 표현으로 정리한다. 곧, 인간이 죄 아래 놓이게 되면 그 결말은 죽음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육체적 죽음만을 뜻하지 않고, 영원한 멸망과 단절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인간은 아무리 선행을 하고 율법을 지키려 해도, 자신의 힘만으로는 이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겨낼 수 없는 절망적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말한다. 율법은 죄가 무엇인지 확인시키고, 죄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게 하는 기능을 가질 뿐, 죄에서 완전한 해방을 주지 못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사건이 터져 나온다. 대속은 말 그대로 “누군가가 대신 값을 치러줌”을 의미하는데, 장재형목사는 이를 단순한 상업적 개념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구약의 희생 제사(특히 레위기 16장의 속죄일 의식)에서 짐승을 잡아 피 흘림으로 백성의 죄를 덮었던 상징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완전한 형태”로 실현되었다는 것이다. 곧, 모든 죄인이 저지른 불순종과 반역, 그로 인한 죽음의 형벌을 예수께서 스스로 짊어지셨다는 것이다.

장재형목사가 로마서 5장 18-19절을 자주 언급하는 것도 이 대속 개념을 명확히 설명하기 위함이다. “한 사람 아담 때문에 온 인류가 죄 아래 놓이게 되었는데, 다른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제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게 되었다”라는 바울의 선언이 그 핵심이다. 이 말은 인류가 죄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던 근본적인 한계를,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과 희생을 통해 단번에 뒤집어놓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장재형목사는 대속의 본질이 “사랑”이라고 부연한다. 대속을 오직 율법적 관점에서만 이해하려 하면, 우리가 갖게 되는 이미지는 ‘공의로운 재판장’이 죄인에게 마땅한 형벌을 집행해야 하므로, 누군가 대신해 값(피)을 지불했다는 다소 차가운 거래 방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피 흘리신 장면은 단순히 “형벌을 대신 받았다”라는 형이상학적 혹은 법정적 개념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전적인 선물’이고, 예수께서 스스로 기꺼이 우리에게 건네주신 ‘자기 희생적 사랑’이라고 장재형목사는 말한다. 이 점이 이해될 때 우리는 비로소 십자가 사건이 그토록 엄청난 파급력을 지니는 이유를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인간에게는 이 대속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복음을 믿음으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는 길이 열리게 된다. 바울이 갈라디아서 등에서 역설한 “이신칭의(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의 원리는, 장재형목사가 말하는 복음의 논리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그는 우리가 복음을 받는 순간, 더 이상 ‘죄인’의 지위를 유지하지 않으며, 하나님 앞에서 ‘의인’으로 선언된다고 말한다. 이는 우리 안에 실제로 어떤 도덕적 완벽함이 생겨나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죄값을 지불하셨기 때문이다. 의가 전가(轉嫁)된다는 신학적 개념이 현실로 적용되는 것이다.

장재형목사는 또한 히브리서의 “영문 밖으로 나가자”라는 표현을 즐겨 인용한다. 구약의 희생 제사에서, 죄를 짊어진 염소나 양은 진영 밖으로 내보내져 죽임을 당했다. 예수께서도 예루살렘 성문 밖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속죄 양’의 역할을 완수하셨다는 것이다. “우리도 그 영문 밖으로 나아가자”라는 권면은, 예수의 고난에 동참하고 대속의 길을 본받으라는 도전으로 읽힌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대속을 단지 신학 용어로 배우고 머리로만 이해하는 데서 그치지 말라는 것이다. 장재형목사는 대속이 곧 복음의 심장부이므로, 우리도 예수께서 걸어가신 길을 닮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곧, 우리가 이 땅에서 복음을 살아낼 때, 서로의 짐을 지고, 때로는 핍박과 오해를 감수하면서도 사랑으로 섬기는 삶을 택해야 한다. 그것이 예수님의 “대속적 사랑”을 우리도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구체적 표현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정죄하는 손가락질이나 폭력으로 바꾸지 못하지만, 예수께서 하신 것처럼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주며 ‘영문 밖’으로 나아가는 자세로 세상을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재형목사는 대속이 최종적으로 “부활”과 결합될 때 온전히 완성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이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진 결정적 희생이었다면, 그분의 부활은 ‘죽음의 권세마저 깨뜨렸다’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선언이 된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에서 일어나지 못하셨다면, 대속은 절반의 메시지로 머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부활의 사건이 실제로 일어남으로써, 죄와 사망의 결박을 완전히 끊고 새로운 생명을 허락하는 구원의 능력이 입증되었다. 대속이 죄 사함을 의미한다면, 부활은 그 죄 사함을 받은 이들이 누리는 “영원한 생명”을 보증하는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장재형목사가 말하는 “죄와 의, 그리고 대속의 길”은 복음의 핵심 골격이다. 죄 아래 놓여 있던 인간이 율법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었던 지경에 놓였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희생과 부활을 통해 마침내 의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는 선언이다. 그리고 그 의를 경험한 사람은, 자기 중심적 삶을 벗어나서 서로의 짐을 지고, 영문 밖으로 기꺼이 나아가며, 고난 속에서도 사랑과 순종으로 살아가게 된다. 이 길은 세상의 가치관과는 전혀 다른, “십자가의 길”이라는 역설적 방식이지만,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구원의 능력이 된다.

우주적 사건으로서의 구원과 부활

장재형목사가 세 번째로 강조하는 주제는, 복음이 단지 개인의 영적 체험이나 교회의 경건 생활 차원을 넘어서는 “우주적 사건”이라는 사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십자가, 그리고 부활은 특정 시공간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면서도, 동시에 전 우주와 역사의 모든 국면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 전환점이라는 것이다.

그는 종종 로마서 5장을 예로 들어, 아담 한 사람으로 인해 죄가 온 인류에게 퍼졌듯이,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인해 모든 사람이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설명한다. 이 말은 인류 운명을 통째로 뒤집는 우주적 의미가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에 내포되어 있음을 가리킨다. 우리가 복음을 단지 “개인적 구원 체험”이나 “어떤 특별한 신비한 사건”으로만 이해한다면, 그 스케일을 협소화하는 셈이라고 그는 말한다.

장재형목사는 이 우주적 관점을 명확히 드러내기 위해 구약의 예언들과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 장면을 종종 연결 지어 해석한다. 다니엘서 7장에 언급된 “구름을 타고 오시는 인자”는 당시 유대인들이 기다렸던 종말론적 왕, 곧 온 세상을 심판하고 다스릴 절대적 주권자의 이미지를 반영한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실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스가랴 9장 9절의 예언대로 ‘나귀를 타고 겸손하게’ 들어오셨다. 이는 “전능한 왕이지만 자기 백성과 함께 고난을 나누는 겸손한 왕”이라는 복합적 이미지로 성취된다.

장재형목사는 이러한 모습을 “하나님의 현현(顯現)의 방식”이라 부른다. 세상 권세자들은 마차나 군마를 타고 개선장군처럼 나타나 권세와 힘을 과시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는 오히려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가장 천한 모습으로 입성하셨다. 그가 지적하기를, 이것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어리석고 약해 보이지만, 하나님의 구원 방식은 바로 이 역설 위에 세워졌다는 것이다(고린도전서 1장 참조).

이어서,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장면은 모든 군중의 기대와 달리 너무나 비참해 보였다. 로마인들도 십자가형은 극악무도한 범죄인에게나 적용되는‘저주의 처형’으로 여겼고, 유대인들에게도 “나무에 달린 자는 저주를 받은 자”(신명기 21장 23절)라는 율법 조항에 의해, 십자가형은 결코 메시아에게 어울리는 죽음이 아니었다. 그러나 장재형목사는 이 지점에서 “사랑의 왕”이자 “고난 받는 종”으로 예언된 이사야 53장의 말씀을 들어, 예수의 죽음은 결코 패배나 저주가 아니라 오히려 죄와 사망을 짊어지는 구속(救贖)의 승리라고 풀이한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은 인간의 상식을 깨뜨리는 방식으로 역사하며, 그 궁극적인 목표가 사랑과 구원에 있기 때문에, 십자가가 오히려 영광의 표지가 된다는 것이다.

장재형목사는 특히 “부활”에 초점을 맞춘다. 예수가 만약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거기서 끝났다면, 우주적 사건이라고 부를 근거가 약화될지 모른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사흘 만에 죽음을 이기시고 살아나셨다. 복음서는 공통적으로 이 부활의 장면을 기록하며, 그 결과 제자들은 두려움에서 담대함으로, 낙심에서 열정적인 증거자로 변화되었다. 이는 곧 죽음이라는 우주적이고도 보편적인 한계를 넘어서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결정적 증거가 된다. 죽음이라는 인류 최대의 적을 끊어내고 영원한 생명의 시대를 열었으니, 그 영향력이 개인을 넘어 전 우주에 미친다는 해석이다.

장재형목사는 홀리 위크(Holy Week)라 불리는 예수의 마지막 주간을 묵상하면서, 이 한 주간에 역사와 우주가 압축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종료주일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의 모습부터 시작해, 마지막 만찬, 겟세마네 기도, 십자가 처형, 부활까지 이어지는 전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인간과 역사의 운명을 바꾸는 구원 서사가 완결된다는 것이다. 특히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께서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하신 장면은, 그가 십자가의 길을 능동적으로 선택하셨음을 보여준다. 예수께서는 단지 억울한 희생양으로 끌려가신 것이 아니라, 인류의 죄를 담당하고 죽음을 깨뜨리기 위한 왕의 대관식을 앞두고 한판 영적 싸움을 치르신 것이다.

그러므로 장재형목사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결코 작고 국지적인 사건이 아니며, 모든 시대와 모든 공간을 관통하는 ‘우주적 결정체’라고 말한다. 이 사실을 깨달을 때, 신앙인은 단지 종교 의식에 참여하는 수준을 넘어, 전 존재가 뒤바뀌는 경험을 하게 된다. 우리가 이 땅에서 맞닥뜨리는 고통과 좌절도, 예수께서 이미 십자가로 감당하셨고, 그 결과 부활로써 끝내 이기셨으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에 갇히지 않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장재형목사는 결국 이 우주적 구원 사건이 각 개인의 삶에도 ‘구체적 실제’가 되기를 기도한다. 그가 사역과 교육 현장에서 줄곧 강조하는 것은, 복음이‘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거창한 말이 실제로 교회와 성도의 일상에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삶 속에서 복음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하면, 우주적 구원 사건의 장엄함도 한낱 교리나 이론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삶에서 예수의 길을 따라 사랑과 섬김을 실천하고, 부활의 능력을 붙들 때, 공동체 안에서나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현실화되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또한, 성경이 말하는 ‘새 하늘과 새 땅’(요한계시록 21장)은 부활의 완전한 결론이자 최종 지향점이다. 장재형목사는 이것을 단지 사후에만 누리는 천국이 아니라,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시작된 영원한 생명의 통치라고 해석한다. 곧, 예수를 믿음으로써 우리는 현재 이 땅에서도 부활의 삶에 동참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세상 전체가 예수의 재림과 함께 완성된 구원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부활은 이미 임하였으나 아직 완전히 도래하지는 않은 미래의 영역을 동시에 보여주는 ‘성취와 긴장’을 담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홀리 위크를 거쳐 부활절에 이르기까지, 교회 전통은 이 과정에서 “십자가와 부활”을 핵심 주제로 삼고 기념해왔다. 장재형목사는 예수께서 십자가로 가는 길이 고난과 수치의 길이었음을 상세히 풀어낸 뒤, 그 길이 결국 “영광과 승리의 길”이라는 역설적인 결론에 이른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예수께서는 의로운 자로서가 아니라, 죄인의 모습으로 세상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 십자가형을 받으셨지만, 그 죽음의 자리에서 우주적 사랑과 구원이 폭발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믿고 받아들이는 모든 인간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막론하고 예수와 함께 부활에 동참하게 된다고 선언한다.

이에 더해, 그는 이 부활 신앙이 교회 공동체 안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되어야 하는지도 제시한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라면, 교회는 ‘부활 생명’을 세상에 전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가난한 이들에게 자비와 나눔을 실천하고, 불의한 권력이나 세상 풍조에 맞서 진리를 선포하며, 서로를 섬기고 사랑하여 세상이 알지 못하는 참된 화해와 평화를 보여줘야 한다. 이것이 부활하신 예수를 따르는 공동체라면 당연히 나타날 열매라고 장재형목사는 말한다.

결론적으로, 우주적 사건으로서의 구원과 부활은 장재형목사의 메시지에서 가장 광대한 지평을 열어주는 주제다. 인간 개인의 죄 문제와 의롭다 하심, 대속을 통해 얻는 자유와 기쁨을 넘어서, 이 사건은 온 역사와 우주를 재편성한다. 장재형목사는 이 점을 여러 차례 반복해 가르치면서, 복음을 단지 어떤‘종교적 교리’나 ‘경건한 지식’으로 축소하지 말고, 인류와 우주 전체가 참여하는 거대한 드라마로 받아들이라고 권면한다. 그리고 그 드라마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보여준 “역설적 사랑의 힘”이라는 것이다. 이 사랑은 세상의 어떤 신화나 서사도 담지 못한 참된 생명과 진리를 담고 있으며, 믿는 자들에게 영원한 소망이 된다.

첫째로, “복음의 핵심과 하나님의 사랑”에서는 복음을 하나님의 전적인 사랑과 연결해 설명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죽음, 부활이 모두 죄인인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부각한다. 복음이야말로 단순한 교리나 정보가 아니라, 생명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며, 누구든지 이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는 자는 새 생명을 얻고, 그 사랑을 증언하는 자로 살게 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둘째로, “죄와 의, 그리고 대속의 길”에서는 인간이 처한 죄와 사망의 실존적 문제를 깊이 성찰하고, 율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이 문제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희생을 통해 구원받을 수 있음을 설명한다. 예수께서는 모든 죄인의 자리를 대신하셨고, 그의 피 흘리심과 부활을 통해 우리를 죄에서 벗어나게 하셨다는 선언은 로마서와 히브리서 등 성경 여러 본문과 연결되어 강력한 해방의 진리가 된다. 대속을 단지 법정 언어로만 좁게 이해하지 말고, 예수의 자기 희생적 사랑으로 보고 체험함으로써 우리의 삶도 그렇게 변화해야 한다는 권면이 핵심이다.

셋째로, “우주적 사건으로서의 구원과 부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죽음, 부활이 개인이나 특정 민족의 역사 속 사건을 넘어, 우주 전체를 뒤흔드는 결정적 전환점임을 강조한다. 다니엘서, 스가랴서, 이사야서 등 구약의 예언과 복음서가 만나는 지점에서, 십자가와 부활이 어떻게 하나님의 현현 방식을 드러내는지에 대해 장재형목사는 설명한다. 그리고 부활은 죽음조차 이긴 하나님의 절대적 승리이며, 그 기쁨과 능력을 믿는 자들은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확언한다.

이렇게 세 가지 축을 따라 복음을 살펴보면,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길은 사랑과 구원의 길이며, 그분이 보여주신 고난과 부활은 모든 시대와 우주 속에서 유일한 희망으로 자리 잡는다. 장재형목사는 이 사실을 회심과 믿음, 그리고 삶의 헌신으로 이어가도록 성도들을 격려한다. 우리가 인생에서 겪는 시련과 유혹, 절망이 아무리 깊다 해도, 주님이 이미 걸어가신 십자가와 부활의 길이 진리이자 생명의 길이라는 확신을 붙들라는 것이다. 그때 인생은 온전히 새롭게 되며, 복음은 우리의 내면과 공동체, 나아가 세상을 변혁하는 능력이 된다.

결국 장재형목사의 설교는, 복음이 ‘무엇’인지에 대한 신학적, 교리적 설명을 넘어, 복음을 ‘어떻게’ 삶으로 풀어낼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실천을 촉구한다. 예수님의 겸손과 순종, 그리고 섬김과 희생, 무엇보다 대속적 사랑이야말로 이 땅에 꼭 필요한 가치이자,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사건이 바로 ‘십자가와 부활’이며, 그것이야말로 인류의 죄와 사망의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고, 개인과 온 세계를 향해 새 시대를 열어젖힌 ‘우주적 복음’임을 그는 힘주어 말한다.

이 메시지는 교회의 예배와 사역, 성도의 영적 생활, 그리고 사회 속에서의 교회 역할 등 광범위한 영역에 적용될 수 있다. 십자가의 사랑을 본받아 서로를 돌보고, 영문 밖으로 함께 나가며, 부활의 기쁨을 세상과 나누는 일은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지만, 이미 예수께서 우리에게 그 길을 보여주셨고, 부활로써 능력을 보증하셨다고 장재형목사는 힘주어 강조한다. 따라서, 이 사랑과 능력을 믿고 의지하는 자들은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고, 오히려 세상의 어둠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진리를 증언하는 삶을 살 수 있다.

결론적으로, 장재형목사의 모든 가르침은 “복음”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세 가지 축—“하나님의 사랑”, “대속의 길”, “우주적 구원”—으로 환원하여 설명할 수 있다. 이 세 축은 서로 분리될 수 없으며, 함께 어우러져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참 구원으로 인도한다. 그러므로 이 메시지를 듣고 묵상하는 이들은, 성탄절에 예수의 오심을 기뻐하고, 고난주간에 예수의 십자가를 묵상하며, 부활절에 예수의 승리를 찬양할 때, 이 모든 사건이 단 하나의 구원 이야기라는 사실을 거듭 되새기게 된다. 그리고 이는 결국 온 우주와 역사, 그리고 우리의 일상 안에서 진행되는 하나님의 구원 드라마가 얼마나 장엄하고 놀라운지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된다.

이처럼 복음은 인간의 한계와 죄에도 불구하고, 죄인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체득하게 하며, 그 사랑을 본받아 세상으로 나아가 서로를 섬기는 공동체를 형성하게 만든다. 대속은 죄와 벌의 법정적 개념을 뛰어넘어, 하나님의 자녀라는 새로운 신분과 함께, 진정한 자유와 기쁨을 선물한다. 우주적 구원과 부활의 사건은 개인의 문제 해결을 넘어 세계 전체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드러낸다. 그 안에 참여하는 자들은 이미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중이며, 완성될 미래를 소망 가운데 사모한다.

이 모든 통찰이 하나로 모일 때, 우리는 장재형목사가 설파하는 복음의 메시지가 단순히 이론적 차원을 넘어, 실제 삶의 모든 영역을 뒤바꾸는 “살아 있는 말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결국 복음이 필요한 이유는, 인간의 역사와 우주가 스스로를 구원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 죽으심, 부활하심을 통해 죄와 사망이 극복될 길이 열렸고, 그 길을 걷는 모든 이들에게는 영원한 생명과 승리가 주어진다. 이것이 바로 장재형목사가 거듭거듭 선포하는 복음의 핵심이며, 우리 모두를 향한 가장 큰 초대이자 선물이다.

Leave a Comment